Page 13 - 캐나다 익스프레스 - 밴쿠버 라이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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WWW.VANCOUVERLIEFE.COM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SPECIAL REPORT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September 11.2020 13


        2020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            <4> 마포~서소문 잇는 만리동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(지난주에 이어 계속…)
        불도저에 추억마저 밀릴쏘냐…





        현대사 굴곡 닮은 만리동 고개여






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람이 없다. 힘들여 멀리 갈 것도 없이 주민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들은 시원한 자연 바람을 만끽하고 있다.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산책로들이 휘감은 고개 정상이 식수를 공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급하는 저장고라는 사실은 주민들도 다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모를 것 같다. 1956년에 조성해 출입금지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지역으로 관리하던 곳을 철조망을 걷어 내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고 ‘만리배수지공원’이라는 휴식과 운동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으니 행정의 힘이란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런 것이다.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배수지공원 언덕 아래에 환일고등학교가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있다. 기독교 감리교 계통의 학교로 1947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년 균명중학교로 개교했다가 1957년 화재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로 전소됐다.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이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학교 십자관은 화재 후 철근콘크리트와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석조를 섞어 지은 건물로 63년이 흐른 지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금에도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. 찍어 낸 벽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돌을 쌓아 올린 게 아니라 제각기 모양이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른 돌을 마치 정교한 축대를 쌓듯이 짜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맞춰 건축했다. 이런 방식으로 지은 건축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물은 흔하지 않다. 1974년에는 학교 이름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을 환일중고등학교로 바꿨다. 우리에게는
        약을 재배하던 밭이 있던 곳에 세워진 약현성당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야구해설가로 유명한 고 하일성씨가 체육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교사로 재직한 학교로 더 잘 알려져 있다.
         성요셉아파트와 붙어 있는 남쪽 언덕에               충격적인 소식이었다. 당시 모습은 잃었지              식장에선 애국가가 아닌 일본 기미가요가
        약현성당이 있다. 약현(藥峴)은 조선시대              만 15억원을 들여 원형에 더 가깝게 복원             연주됐다. 손기정은 인터뷰나 축하 인사                소의초등학교에서 애오개역으로 내려가
        에 약을 재배하는 밭이 있던 곳이어서 붙여             됐다. 잘 꾸며진 정원을 갖춘 약현성당은              때마다 ‘손긔정’이라는 한글 사인을 해주              다 보면 왼쪽에 한국정교회 서울 성니콜라
        진 이름이다. 그 영향이었을까. 이 지역에는            결혼식장으로도 사랑을 받고 드라마 촬                고 간단한 한국 지도나 ‘KOREAN’을 그리           스대성당이라는 숨은 장소를 발견할 수
        약을 만드는 기업들이 있었거나 지금도 있              영장으로도 애용되는 명소가 됐다. 서학               거나 써줘 한국인임을 알렸다.                   있다. 정교회는 동유럽에서 발전한 기독교
        다. 잊혀져 가는 종기 치료제 ‘이명래고약’            (西學)을 믿었다는 혐의로 신유박해와 병               목동으로 옮긴 양정고등학교 교정은 공               의 한 교파다. 우리나라 신도는 3000여명
        본점도 원래 중림동에 있었다. 이명래고약              인박해 당시 서소문 밖에서 처형된 98위의             원화됐다가 마라톤의 성지, 손기정체육공               쯤 되고 전국에 6개의 성당이 있다. 교세가
        의 개발자는 이명래가 아니라 충남 아산               순교자를 모신 성당 내 서소문순교자기념               원으로 재단장해 지난달 문을 부분적으                약한 것은 민족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.
        에서 활동한 에밀 피에르 드비즈라는 프               관은 방문객들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.                로 열었다. 공원 내 손기정기념관은 서울미            1900년 최초 전래된 정교회는 러시아가 러
        랑스 신부라고 하니 뜻밖이다. 서울에 살               만리재는 마라토너 손기정의 기억을 되살              래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입구에는 ‘남승룡              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신부와 신도들이
        던 천주교도인 이명래가 박해를 피해 아산              려 주는 곳이기도 하다. 소년은 초등학교              러닝센터’를 지어 업적을 함께 기리고 있다.            떠났고, 몇 안 되는 국내 신자들은 고아처
        으로 내려갔다가 드비즈 신부를 만나 제               6학년 때 5000m 경기에서 어른들을 제치            손기정이 갖고 온 나무 화분(월계수는 독              럼 남겨졌다. 1906년 러시아 선교사가 다
        조법을 전수받고 민간요법을 더해 발전시               고 우승했다.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압록               일 기후에서는 자라지 않아서 월계수가 아              시 도착했지만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
        킨 게 이명래고약이다. 이명래고약은 현대              강 건너 중국 회사에 20리 길을 매일 뛰어            니라 미국 대왕참나무 화분이다)은 교정               정교회는 심한 박해를 받게 됐다.
        의약에 밀려 2011년에 생산이 중단됐다. 충           서 다녔던 소년은 마라톤 특기생으로 양               에 심어 84년 세월 동안 거목으로 자랐다.             이후 고립무원의 상태로 일제강점기를 넘
        정로역 바로 옆에는 제약회사 종근당이 있              정고보에 입학했다. 1936년 베를린올림픽              손기정기념관의 바로 위에는 1895년에 문            긴 정교회는 유엔군 참전국의 일원인 그
        다. 철공소 견습공, 쌀 배달원으로 일하다            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는 활짝 웃               을 연 봉래초등학교가 있다. 우리나라에               리스군 종군 사제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
        21살 때부터 약품 외판원으로 전국을 돌              고 있었지만 금메달 손기정과 동메달 남               서 가장 오래된 서울 교동초등학교보다 1              교회를 재건했다. 아현동에 부지를 마련해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승룡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. 일본               년 뒤지는 유서 깊은 학교다. 만리재 고개             대성당을 완공한 것은 1968년이었다. 반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대표로 출전한 설움이 앞섰던 까닭이다.               정상의 짙푸른 녹음은 과거에 이곳이 제법              구형 돔을 얹은 비잔틴풍 건축물은 조창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시상식 사진을 보면 손기정은 가슴의 일               깊은 산속이었음을 알려 준다. 잘 조성한              한 전 경희대 교수가 설계한 것으로 국내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장기를 나무 화분으로 가리고 있다. 시상              산책로는 여름의 열기를 이겨 내기에 모자              에 두 개밖에 없다. 독특한 돔 지붕을 보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고 산동네 아이들은 ‘대머리교회’라고 불렀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고 한다. 아현4구역 재개발구역 안에 있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는 성당은 옮겨질 뻔한 위기를 넘겼다.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만리재의 추억은 개발의 압력 속에서 연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처럼 사라졌다. 덕분에 사람들은 편안하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고 깨끗한 주거 환경을 얻었다. 그러나 그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것과 맞바꾼 것은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삭막함이므로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. 군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데군데 박힌 지난 시간의 흔적은 아련하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기만 하다. 박제해 둘 수도 없었던 그때는
        아다니며 약을 팔았던 고 이종근은 1941
        년 이곳에 궁본약방을 세웠고 1956년 종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멀리서 무심히 흐르는 한강만이 기억할 것
        근당으로 발전했다.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다.
        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자 고딕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글 손성진 서울신문 논설고문
        양식 건물인 약현성당이 1998년 취객의 방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sonsj@seoul.co.kr
        화로 전소됐을 때 숭례문 화재만큼이나                성 니콜라스 대성당 앞에서 주임신부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.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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